[2009/12/29] 우리말) 눈부처

조회 수 2623 추천 수 146 2009.12.29 10:01:56
우리말에 '눈부처'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이라는 뜻입니다.
이 눈부처는 두 사람이 서로 똑바로 마주 봤을 때 상대방의 눈동자에 보이는 내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마주할 때 비로소 나를 발견하는 것이죠.

        안녕하세요.

저도 드디어 내의를 입었습니다. 목이 아직도 칼칼한 게 아무래도 감기가 오래갈 것 같아서요.
아내가 싸준 모과차를 한 잔하며 글을 씁니다. "따술때 머거야 존거다."라는 어머니 말씀이 생각나네요. ^^*

지난 주말에는 아는 동생 식구를 불러 같이 점심을 먹었습니다.
저처럼 어렵게 애를 낳은 친구인데, 마침 이번에 박사학위 논문심사를 통과했다고 해서 축하하는 자리로 식구가 같이 만났습니다.
어렵게 세상 빛을 본 애들도 처음 보고...

애들 눈동자는 왜 그리 맑은지요.
그 작은 눈동자 속에 마치 온 우주가 들어 있고, 이 세상 모든 평화가 다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 눈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 눈동자에 비친 제 모습을 찾게 됩니다.
너무 맑은 눈동자에 비친 초라한 제 모습을 보면 제가 뜨끔합니다.

우리말에 '눈부처'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이라는 뜻입니다.
이 눈부처는 두 사람이 서로 똑바로 마주 봤을 때 상대방의 눈동자에 보이는 내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마주할 때 비로소 나를 발견하는 것이죠.

이제 이틀만 지나면 한 해가 갑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우리집 애들 눈을 보면서 눈부처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이동훈 씨가 박사학위를 받는 최종 심사를 통과한 것을 축하하고,
애들 키우며 고생한 이동훈 씨의 아내 은경 씨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애들 잘 키우세요. ^^*


고맙습니다.




눈부처

문수현 씀

그대의 눈동자에 아직
내가 새겨지지 않았다면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서
그대의 눈부처 되리
떠나가도 헤어져도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는
사랑한다 말해놓고 돌아서면
지워지는 그림자가 아니라
무시로 스쳐가는 구름이 아니라
호수의 바닥이 된 하늘처럼
깊이 뿌리내리고
눈 깜박일 때마다
눈동자 가득 살아나는 얼굴
나, 그대의 눈부처 되리        

        아래는 예전에 보낸 우리말편지입니다.







[저는 절대 똥기지 않을 겁니다]

오늘 아침 KBS가 또 저를 실망시키네요.
7시 7분쯤 조류독감 기사를 전하면서
화면에 '3Km 내 매몰'이라고 썼네요.
거리 단위는 Km나 KM가 아니라 km입니다.
세계에 딱 세 개밖에 없는 공영방송 가운데 하나인 KBS.
제발 정신 좀 차리고 방송하길 빕니다.

오늘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저는 농촌진흥청 본청에서 일합니다.
요즘 제가 하는 일은 농업연구상 심사 관리입니다.
농촌진흥청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받는 상 가운데 가장 값어치 있는 상이 바로 이 농업연구상입니다.
그 상을 추천받아 심사위원들이 심사하실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제가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심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느냐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
당연히 심사 중이라 아무런 말씀도 못 드리죠.
슬쩍 귀띔해 달라는 분도 있고,
자기에게만 알려달라는 분도 있고,
대충 상, 중, 하에서 어디인지만 알려달라는 분도 있고...

오늘은 그런 낱말을 좀 소개해드릴게요.
잘 아시는 귀띔이 있습니다.
상대편이 눈치로 알아차리게 슬그머니 알려주는 것이죠.
아마도 귀를 뜨이게 해 준다는 뜻일 겁니다.
이를 한자로는 내시(內示)라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알리기 전에 몰래 알려 주는 것이죠.

재밌는 낱말은 뚱기다와 똥기다입니다.
'뚱기다'는
'팽팽한 줄 따위를 퉁기어 움직이게 하다.'는 뜻도 있지만,
'눈치 채도록 슬며시 일깨워 주다.'는 뜻도 있습니다.
친구에게 중요한 정보를 뚱겨 주다/네가 그렇게 뚱겨 주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처럼 씁니다.

'똥기다'는
'모르는 사실을 깨달아 알도록 암시를 주다.'는 뜻입니다.
그는 눈치가 빨라서 두어 마디만 똥겨도 금세 알아차린다처럼 씁니다.


뚱기다와 똥기다. 뜻이 비슷하죠?
좀더 따져보면,
똥기다는 모르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고,
뚱기다는 슬며시 일깨워주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지금 다루는 연구상 결과를
그 누가 물어도
귀띔해주거나, 내시를 주거나, 똥기거나, 뚱기지 않을 겁니다.
그런 일이라면 아예 전화도 하지 마세요. ^^*

보태기)
'상대편이 눈치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미리 슬그머니 일깨워 줌'이라는 이름씨는 귀뜸이 아니라 귀띔입니다.
귀뜸은 아마도... 귀에다가 뜸을 뜨는 것을 말할 겁니다.
그러나 그런 낱말도 대한민국 국어사전에 없습니다. ^^*

답장)
내시? 내 평생 처음으로 들어 보는 말이라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지요.
있더군요. 님이 사전에 없는 말을 썼을 리가 없지요.
그런데 문득 이게 왜 국어사전에 올라 있나 생각해 보고는
중국말은 어떤가 하고 한중사전(고려대)을 찾아보았지요.
'귀띔'을 보니 '內示'는 없고 '告知, 示意, 暗示, 口信, 透信'이 있더군요.
이상하다 싶어 '내시'를 찾아보았죠. 올라 있지 않더군요. 정말 이상하지요?
인터넷 다음 중국어사전을 보니, 올림말 '내시'는 있는데 중국말은 '暗示'라고 하는군요.
이 낱말[암시]은 우리도 쓰는 거죠. '귀띔'을 보니, '告知, 提示, 暗示, 示意'라고 뒤쳤는데
여기도 '內示'는 없군요. 그러고 보면 '內示'는 중국말이 아닌가 봅니다.
그럼 일본말은 어떤가 하고 한일사전(두산동아)을 찾아보았지요.
올림말 '귀띔'에 '內示'라는 건 보이지 않는군요. 그럼 '내시'는?
드디어 찾았습니다.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內示'는 일본 한자말이었습니다그려.
일본 한자말이 어찌하여 우리말 사전에 버젓이 올라 있는가 하는 까닭이야 님도 잘 아시겠고...
그런데... 왜 님이 굳이 이런 한자말을 알려주는지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말기척 : 무슨 일을 하거나 어디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알리는 일'이나 알려주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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