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어제 받은 편지를 먼저 소개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우리말 편지에서 여러 번 보았으나 말 안 하고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지나치지 못하고 말씀드릴까 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한자말 '항상'을 우리말 '늘'이나 '언제나'로 갈음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되도록 '매일'보다는 '날마다'를, '중'보다는 '가운데'를,
'예'보다는 '보기'를 많이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예를 들어, '먹다'의 명사형은..."이라고 하셨는데,
"예를 들면, ..."이라고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단어'보다는 '낱말'을 많이 써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단어' 하면 어쩐지 '영어 단어'가 생각납니다. - 아! 그 지겨운 영어 단어 외우기란....
제 머릿속에서는 우리말과 '단어'가 통 어울리지 않는군요.
이건 저만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어쨌거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님도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우리말로 쓸 수 있는 건 한자말보다는 우리말로 쓰자는 것입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분의 편지를 받고,
제가 가지고 있는 그동안 보낸 우리말편지를 봤더니,
'단어'라는 낱말이 무려 473개나 들어있더군요.
어찌나 창피하던지요.
그 자리에서 몽땅 다 바꿔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따끔하게 꾸중해 주시는 분이 계셔서
저는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우리말편지를 씁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오늘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요즘 받는 편지 중,
저에게 즐거운 추석 되라는 분이 많으십니다.
일일이 답장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말씀드릴게요.

싫습니다.
저는 즐거운 추석이 되기 싫습니다.

즐거운 명절 되라고요?
그것도 싫습니다.

착한 사람이나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 멋진 사람은 되고 싶어도,
'즐거운 추석'이나 '즐거운 명절'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즐거운 추석'이 사람인가요? 식물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무슨 미생물인가요?
제가 농촌진흥청에 다녀도 그런 동식물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

저는 추석을 즐겁게 보내거나, 재밌게 누릴 수는 있지만,
'즐거운 추석'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즐거운 추석 되세요.'는 영 어색한 말입니다.
굳이 따지면 문법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되세요.'라는 명령형으로 인사를 한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이런 것은 아마도 영어 번역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따라서,
'즐거운 추석 되세요.'는
'추석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추석을 즐겁게 보내시길 빕니다.',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로 바꾸는 게 좋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즐거운 관람 되세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즐거운 쇼핑 되세요, 좋은 시간 되세요, 안전한 귀성길 되세요, 푸근한 한가위 되세요 따위도 모두 틀린 겁니다.
사람이 여행, 관람, 하루, 쇼핑, 시간 따위가 될 수 없잖아요.
사람이 즐겁게 여행하고, 재밌게 보고, 행복하게 보내고, 즐겁게 시장을 보는 겁니다.


좀 삐딱하게 나가볼까요?

저에게 '즐거운 하루 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저더러 '하루'가 되라는 말이니까,
어떻게 보면 '하루살이'가 되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큰 욕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절대 '하루'나 '하루살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또,
'오늘도 행복한 날 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저더러 '날'이 되라는 말이니까,
어떻게 보면 '날파리'가 되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이거 저에게 욕한 거 맞죠?
저는 절대 '하루살이'나 '날파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대로 살게 그냥 놔두세요. ^^*

여러분,
추석 잘 보내시고,
추석 잘 쇠시고,

고향 잘 다녀오시고,
추석을 즐겁고 행복하고 푸근하게 보내시길 빕니다.

우리말123

보태기)
1. 삐딱하게 나간 게 좀 심했나요?
될 수 있으면 그런 말을 쓰지 말자는 저의 강한 뜻으로 받아주시길 빕니다.
인사는 고맙게 잘 받습니다.

2. '날파리'는 '하루살이'의 사투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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