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24] 우리말) 대충 잘하라는 게 어때서?

조회 수 2983 추천 수 94 2007.04.24 10:29:23
어떤 일을 '대충 잘'하라고 하면,
일의 뼈대를 추려서 잘하라는 말이 됩니다.
근데 왜 웃죠?


안녕하세요.

어젯밤 11시 22분, SBS 야심만만에서
'야구 시합'이라는 자막이 나왔습니다.
'시합'은 국립국어원에서 '겨루기'로 다듬은 말입니다.
겨루기가 낯설면 '경기'라고 쓰시면 됩니다.

11시 23분에
'왕년에 한가닥'이라는 자막이 나왔습니다.
"어떤 방면에서 썩 훌륭한 재주나 솜씨"는 '한가닥'이 아니라 '한가락'입니다.
'한가닥'은 대한민국 국어사전에 없는 낱말입니다.

11시 29분에
여자친구에게 [채였다]고 출연자와 사회자가 말했습니다.
다행히 자막에는 '차였다'고 제대로 나왔습니다.

아무리 오락 방송이라고 하지만 해도 너무하는군요.
제 눈과 귀가 짜증을 견디지 못해 그냥 텔레비전 끄고 잤습니다. ^^*

오늘은 우리말을 좀 곱씹어 볼게요.

제 일터에는 저와 함께 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 제 짝꿍 정희 씨가 저에게
"이것을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으면,
저는 항상 "대충 잘~"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남들이 들으면 웃습니다. 왜 웃죠?

'대충'은,
부사로 "일의 뼈대를 추리는 정도로."를 뜻합니다.
일이 대충 정리되다, 일을 대충 끝내다, 범인의 윤곽을 대충 파악하다처럼 씁니다.
일의 벼리를 챙기는 것이지 결코 얼렁뚱땅 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일을 '대충 잘'하라고 하면,
일의 뼈대를 추려서 잘하라는 말이 됩니다.
근데 왜 웃죠?

대충을 두 번 쓴 '대충대충'도 그렇습니다.
대충대충은 "일이나 행동을 적당히 하는 모양"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일이나 행동을 '적당히' 하는 모양이 뭐죠?
슬쩍슬쩍 넘어가는 모양인가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듣는 '적당'이 무척 서운하게 생각합니다. ^^*

적당(的當)은 "꼭 들어맞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행동을 적당히 하는 것은,
그 상황에 꼭 들어맞게 하는 알맞은 행동을 말합니다.
근데 왜 '적당히'라고 하면 슬렁슬렁을 떠올리죠?

다들 그러시니,
'적당주의'를 사전에서
"일을 어물어물 요령만 피워 두루뭉술하게 해치 우려는 태도나 생각."이라 풉니다.
이쯤 되면 '적당'이 서운해서 울 정도가 됩니다.

'적당히'는 결코
일을 얼렁뚱땅, 알랑똥땅, 엄벙뗑 넘기는 게 아닙니다. ^^*

제자 자주 쓰는 '대충 잘'을 곱씹어 보면 이렇게 깊은 뜻이 있습니다.
제 말에 틀린 게 있나요? ^^*

내일은 '잘'을 더 파 볼게요.

우리말123

보태기)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적당(的當)은 "꼭 들어맞음"이라는 뜻이고,
적당(適當)은 "정도에 알맞다."는 뜻입니다.


아래는 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입니다.

[독농가 >> 모범농가/우수농가]

아시는 것처럼 저는 농업 관련 일을 하는데요.
일을 하다 보면 농업 용어에 일본어투 말이 참 많이 보입니다.

'독농가'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저는 처음 이 낱말을 보고,
혼자서 농사를 짓는 獨농가로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서 농사짓기 힘드니까 정부에서 독농가 지원을 많이 생각하나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독농가'는 篤農家더군요.
도타울 독 자를 써서 모범 농가라는 뜻이죠.

일본어 사전을 보니, '독농가'는 없고, '독농'만 있는데,
とくのう[도꾸노우]로 "독실한 농사꾼"이라고 나와 있더군요.

이런 일본말을 왜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농사를 열심히 짓는 착실한 사람. 또는 그런 집"을 '모범 농가'나 '우수 농가'라고 하면 누가 잡아갈까요?
아니면, 관공서의 권위가 떨어질까요?
그것도 아니면, 남들이 모를까 봐 그렇게 멋진(?) 일본말로 국민을 배려하는 것일까요?
제발 관공서부터 일본말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본말이나 쓰고 있으니,
일본者(여기에 쓴 者는 놈 자 자 입니다.)들이 우리를 헤프게 보고 심심하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나대죠.
어제는 뭐 독도 주변을 측량한다면서 설치고...

보태기)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을 보면,
'독농가'를 '모범 농가'로 바꾸고 비슷한 낱말로 '근농가'와 '역농가'를 들어놨습니다.
'근농가'를 보니, "농사를 부지런히 짓는 집안. 또는 그런 사람"라 풀어놓고, 비슷한 낱말로 '독농가'와 '역농가'를 들어놨습니다.
독농가는 일본어투 말이니 '모범 농가'로 바꿔서 쓰거나,
'근농가'나 '역농가'로 쓰라는 말이겠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성제훈 박사님의 [우리말123] 게시판 입니다. id: moneyplan 2006-08-14 78481
공지 맞춤법 검사기^^ id: moneyplan 2008-11-18 84153
216 [2007/05/04] 우리말) 금세와 금새 id: moneyplan 2007-05-04 3570
215 [2007/05/03] 우리말) 하고많은 사람 가운데서... id: moneyplan 2007-05-03 3345
214 [2007/05/02] 우리말) 양반다리와 책상다리 id: moneyplan 2007-05-02 3724
213 [2007/05/01] 우리말) 두남두다 id: moneyplan 2007-05-02 2892
212 [2007/04/30] 우리말) 햇귀를 아세요? id: moneyplan 2007-04-30 3176
211 [2007/04/27] 우리말) 새벽에 일어나셨나요? id: moneyplan 2007-04-27 2619
210 [2007/04/26] 우리말) 싱싱하다 id: moneyplan 2007-04-26 3122
209 [2007/04/25] 우리말) 잘과 잘못 id: moneyplan 2007-04-25 2694
» [2007/04/24] 우리말) 대충 잘하라는 게 어때서? id: moneyplan 2007-04-24 2983
207 [2007/04/23] 우리말) 꽃 이름 id: moneyplan 2007-04-23 2933
206 [2007/04/21] 우리말) 그냥 제 넋두리입니다 id: moneyplan 2007-04-23 3012
205 [2007/04/20] 우리말) 일자와 날짜 id: moneyplan 2007-04-20 4333
204 [2007/04/19] 우리말) 외톨이 id: moneyplan 2007-04-19 2790
203 [2007/04/18] 우리말) 아이고머니나...... id: moneyplan 2007-04-19 2912
202 [2007/04/17] 우리말) 가름과 갈음 id: moneyplan 2007-04-17 3978
201 [2007/04/16] 우리말) 틀린 자막 몇 개 id: moneyplan 2007-04-16 3025
200 [2007/04/14] 우리말) 만발? 활짝 핌! id: moneyplan 2007-04-16 3566
199 [2007/04/13] 우리말) 씨 띄어쓰기 id: moneyplan 2007-04-13 4134
198 [2007/04/12] 우리말) 어벌쩍 넘기다 id: moneyplan 2007-04-12 3337
197 [2007/04/11] 우리말) 비빔밥을 버무리다 id: moneyplan 2007-04-11 3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