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아침 KBS가 또 저를 실망시키네요.
7시 7분쯤 조류독감 기사를 전하면서
화면에 '3Km 내 매몰'이라고 썼네요.
거리 단위는 Km나 KM가 아니라 km입니다.
세계에 딱 세 개밖에 없는 공영방송 가운데 하나인 KBS.
제발 정신 좀 차리고 방송하길 빕니다.

오늘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저는 농촌진흥청 본청에서 일합니다.
요즘 제가 하는 일은 농업연구상 심사 관리입니다.
농촌진흥청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받는 상 가운데 가장 값어치 있는 상이 바로 이 농업연구상입니다.
그 상을 추천받아 심사위원들이 심사하실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제가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심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느냐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
당연히 심사 중이라 아무런 말씀도 못 드리죠.
슬쩍 귀띔해 달라는 분도 있고,
자기에게만 알려달라는 분도 있고,
대충 상, 중, 하에서 어디인지만 알려달라는 분도 있고...

오늘은 그런 낱말을 좀 소개해드릴게요.
잘 아시는 귀띔이 있습니다.
상대편이 눈치로 알아차리게 슬그머니 알려주는 것이죠.
아마도 귀를 뜨이게 해 준다는 뜻일 겁니다.
이를 한자로는 내시(內示)라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알리기 전에 몰래 알려 주는 것이죠.

재밌는 낱말은 뚱기다와 똥기다입니다.
'뚱기다'는
"팽팽한 줄 따위를 퉁기어 움직이게 하다."는 뜻도 있지만,
"눈치 채도록 슬며시 일깨워 주다."는 뜻도 있습니다.
친구에게 중요한 정보를 뚱겨 주다/네가 그렇게 뚱겨 주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처럼 씁니다.

'똥기다'는
"모르는 사실을 깨달아 알도록 암시를 주다."는 뜻입니다.
그는 눈치가 빨라서 두어 마디만 똥겨도 금세 알아차린다처럼 씁니다.

뚱기다와 똥기다. 뜻이 비슷하죠?
좀더 따져보면,
똥기다는 모르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고,
뚱기다는 슬며시 일깨워주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지금 다루는 연구상의 결과를
그 누가 물어도
귀띔해주거나, 내시를 주거나, 똥기거나, 뚱기지 않을 겁니다.
그런 일이라면 아예 전화도 하지 마세요. ^^*

우리말123

보태기)
"상대편이 눈치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미리 슬그머니 일깨워 줌"이라는 이름씨는 귀뜸이 아니라 귀띔입니다.
귀뜸은 아마도... 귀에다가 뜸을 뜨는 것을 말할 겁니다.
그러나 그런 낱말도 대한민국 국어사전에 없습니다. ^^*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입니다.
실은 바로 작년에 농촌진흥청에서 주는 농업연구상을 보고 이렇게 비꼬았는데,
딱 1년 뒤 바로 제가 그 일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세상 참......

[으뜸, 버금]

요즘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아침저녁 인사로,
“날씨가 많이 추워졌죠? 건강 조심하세요!”라는 말을 가끔 들으시죠?
당연히 자주 그런 인사를 하실 것이고.

여기서,
추위나 더위의 정도를 나타내는 부사는
‘많이, 적게’가 아니라,
‘상당히’ 나 ‘꽤’를 써야 바릅니다.
앞으로는,
“날씨가 꽤 춥죠? 건강하게 보내세요!”라고 인사하세요.

오늘은 으뜸과 버금에 대해서 말씀드려볼게요.
몇 년 전, 제주도에서 만든 책자 중에,
‘제주도!, 하와이에 버금가는 관광 도시로 개발!’이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버금가는’이 잘못 쓰였습니다.

‘버금’은 “으뜸의 바로 아래 또는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물건”을 이릅니다.
그리하여 만년 차점(次點) 낙선자에게 하는 말로
“그는 선거를 했다 하면 늘 버금이었다”고 하고,
큰아들이 나약하여 둘째아들을 보위에 앉히려 할 때
“나약한 맏이를 폐하고 억센 버금을 세운다”라고 합니다.
곧, ‘버금가다’는 “으뜸의 바로 아래가 되다”로,
“왕에 버금가는 실세”라고 하면 ‘제2인자’란 뜻이 됩니다.
‘버금가다’는 ‘다음가다’라는 뜻이지 동등하다거나 같은 수준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뜻으로 쓰려면 ‘맞먹다’나 ‘같다’를 써야 합니다.

곧,  
‘제주도!, 하와이에 맞먹는 관광 도시로 개발!’이라고 써야하는 거죠.
‘맞먹는’을 쓰지 않고, ‘버금가는’을 쓰면,
만 년 일등은 하와이고 잘해야 이등이 제주도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 뜻으로 이 문장을 만든 것은 아닐 거잖아요.

‘버금가다’는 참 좋은 우리말입니다.
상황에 맞게 잘 살려쓰면 좋겠습니다.

제가 일하는 농촌진흥청에서는
매년 연말에 농업연구상이라는 것을 줍니다.
연구를 열심히 한 연구원에게 주는 상으로,
연구원이 받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상 중 하나죠.

그러나 이 상의 종류가 참으로 묘합니다.
우수상 8명,
최우수상 2명,
대상 1명입니다.

‘최우수’에서 ‘최’는 ‘가장 높다’는 뜻으로,
절대 두 개가 될 수 없는데 어떻게 최우수상이 두 명이며,
가장 높다는 상인 최우수상보다 더 높은 상이 ‘대상’이라는 말인데,
이게 말이 되나요?
어떻게 대상이 최우수상보다 높죠?
그럼 그 위에 클 태를 써서 ‘태상’도 하나쯤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다 그보다 더 높은 상을 만들어야 한다면 참 진 자를 넣어서 ‘진태상’이라고 만들 건가요?
우리 어른들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니, 애들이 그걸 배워서
‘오리지날 울트라 슈퍼 캡 짱’이라는 소리나 지껄이고 다니는 겁니다.

바로 이런 상을,
으뜸상, 버금상, 아차상으로 나눠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꼭,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으로 나눠
말도 안 되는 한자를 써야만 품위 있는 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으뜸상, 버금상, 아차상!
얼마나 좋아요.

제 말씀이 좀 심했나요?
제가 받지 못했기에 그냥 한 번 뒤대봤습니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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