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전 엄마의 가계부 - 경향신문

조회 수 8124 추천 수 0 2013.03.14 09:26:30

[공감]37년 전 엄마의 가계부
김희연 경제부 차장


“엄마, 팔 한짝 다리 한짝씩 떼가라. 돈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아니”.

새 학기가 시작되는 아침에는 늘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준비물도 많고 육성회비, 급식비 등 학교에 내야 할 크고 작은 돈들이 몰릴 때였다. 바로 전날 저녁도 아니고 꼭 등굣길에 3남매가 서로 자기 것을 먼저 달라며 한꺼번에 손을 내미니 엄마는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나마 내줄 돈이 있으면 다행이다. 돈이 모자라 어느 자식은 주고, 어느 자식은 빈손으로 학교에 보낼 때 엄마 심정은 어땠을까.khan_art_view.html?artid=201303072122465&code=990100http://player.uniqube.tv/Logging/ArticleViewTracking/khan/201303072122465/news.khan.co.kr/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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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생각이 난 것은 그때의 나만큼 자란 아이와 새 학기를 맞아 종종 돈 문제로 승강이를 벌일 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을까. ‘자식들’은 정말 묘한 기술을 타고난 것 같다. 어떻게 자고나면 필요한 물건들이 번뜩번뜩 생기는지 모르겠다. 학년이 바뀌었으니 새 가방을 사달라는 요구부터 학원에 갈 때 입을 봄철 야상,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을 휴대폰…. 아이는 아이대로 친구들과의 용돈까지 비교하며 불만이 많고, 엄마 입장에서는 꼭 필요해 보이지도 않는 것을 사달라고 하는 것 같아 때론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일은 쉬지 않고 하는데 생활은 나아지는 것 같지 않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돈 들어가는 곳은 더 많아진다. 대출금의 원금을 갚기는커녕 이자 내기에도 바쁜데 전문가들은 은퇴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실을 불평하다가 문득 지금보다 경제수준이 한참 낮았던 시절 엄마는 어떻게 가계를 꾸렸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며칠 전 친정의 장농 서랍에서 오래된 몇 권의 가계부를 발견했다. 어릴 적 엄마가 밤마다 가계부를 펼치고 하루를 정리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알록달록한 꽃그림 표지인 ‘가계부’는 누렇게 변색돼 있고 볼펜 글씨가 흐릿했지만 당시 생생한 삶이 다가왔다. 여러권 중에 1976년도 가계부를 펼쳤다. 3월10일 연탄 5장 1750원, 동태 250원, 가오리 200원, 육성회비 900원, 퍼머 1500원. 3월11일 쇠고기 3000원, 콩나물 50원, 샘표간장 200원, 쌀 한가마(80㎏) 2만5000원, 방범비 200원. 막내저축 500원, 둘째과외 5000원…. 공과금은 매달 합산돼 있었다. 그중 10월 한달치는 수도료 2600원, 전기료 2780원, 오물수거비 200원, TV시청료 1000원, 신문대 400원, 전화비 2052원, 자녀 학비 4만3980원.

가계부 하단에는 일기를 쓸 수 있는 작은 메모란도 있다. 9월의 어느날에는 생활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짧은 글들이 있었다. ‘요사이는 지출이 너무 많아 여러가지 걱정이다. 안 쓰려고 애를 써도 잘 안되고 이달에는 추석이 있어 많이 쓰는가 보다’ ‘큰 아이 생일인데 마음껏 못해준 것 같아 미안하다’ ‘오랜만에 언니가 서울에 다니러 왔다. 대접이 시원찮아 서울역에 배웅 다녀오는 길 내내 마음이 서운하다’….

가계부는 알뜰했다. 1976년은 석유파동 등 국제자원파동으로 한바탕 몸살을 앓고 난 후다. 물가상승률이 12~13%로 그나마 진정됐다. 경기는 안 좋은데 물가가 뛰어오르는 국제적인 스태그플레이션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을 기약할 때였지만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팠으리라.

37년 전 경제수준이나 문화, 생활방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지만 ‘기름기(과소비)’가 빠진 듯 단출한 가계부를 보면서 반성하게 됐다. 저성장, 저금리, 경기침체에 어려움을 겪으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한편으론 좀더 간소한 삶으로 돌아갈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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