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9] 우리말) 가차없다

조회 수 2825 추천 수 92 2009.10.19 11:35:34
따라서,
'가차 없다'고 하면 임시로 빌어 오는 것도 안 된다는 것이니,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겁니다.
그 뜻이 더 넓어져 "사정을 봐 주거나, 용서가 없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안녕하세요.

아침에 일터에 나오면서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이번에 가을 개편이 있었는데 혹시 맘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가차없이 말씀을 해 달라더군요.(7:40, MBC)
오늘은 '가차'를 알아보겠습니다.

가차는 거짓 가(借) 자와 빌릴 차(借) 자를 써서 "정하지 않고 잠시만 빌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임사로 빌림'으로 다듬었습니다.(저는 별로 맘에 들지 않습니다.)

사실 이 '가차'는
한자의 구성과 쓰임에 관한 여섯 가지 분류에서 왔습니다.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가차(假借), 전주(轉注) 가운데 하나가 가차입니다.
여기에 쓰인 가차는
어떤 뜻을 나타내는 한자가 없을 때 뜻은 다르나 음이 같은 글자를 빌려 쓰는 방법을 뜻합니다.

來, 이 한자가 무엇을 닮았나요?
요즘 들판에 나가면 볼 수 있는 벼 이삭을 닮지 않았나요?
이 글자는 곡식의 이삭을 뜻하는 상형문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다'를 뜻하는 글자로 쓰이고 있습니다.
오다는 뜻의 한자가 없어서 음이 같은 來자에 '오다'라는 뜻을 빌려 쓴 겁니다.
바로 '가차'한 거죠.
산스크리트어의 [Buddha]를 글자의 본래 뜻과 상관없이 발음만 따와
'佛陀'(부처)로 쓴 것도 가차의 한 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차 없다'고 하면 임시로 빌어 오는 것도 안 된다는 것이니,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겁니다.
그 뜻이 더 넓어져 "사정을 봐 주거나, 용서가 없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날씨가 추워지는 가을 다가옵니다.
지난가을에 별로 입지 않는 옷을 '가차 없이' 버렸더니,
이번 가을에 입을 옷이 별로 없네요. ^^*

오늘도 많이 웃으시고,
이번 주도 좋은 생각 많이 하시면서 보내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보태기)
1.
'가차'는 명사이고, '없다'는 '없다'는 용언이니까 이 둘은 띄어 쓰는 것이 바릅니다.
'가차 없다'가 맞죠.
그러나
한글 맞춤법 제47항에 보면,
연결어미 '-아/어'로 이어진 보조 용언 구성은 띄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가차없다'가 비록 사전에 한 낱말로 오르지는 못했지만,
'가차없다'고 붙여 쓰셔도 됩니다.

2.
'지난가을'은 한 낱말로 사전에 올라 있으니 붙여 쓰고,
'이번 가을'은 한 낱말로 사전에 오르지 못했으니 띄어 써야 바릅니다.
'지난주/이번 주'고 같은 경우입니다.


  

아래는 예전에 보낸 우리말편지입니다.






[마디게 자라는 식물]

안녕하세요.

제가 일하는 농촌진흥청에는 농업관련 전문가 들이 많습니다.
벼, 콩, 사과, 보리, 농약, 수박, 채소, 소, 말, 바이오에너지, 농촌생활, 기계 따위를 전공으로 공부하신 분들이 모여 있습니다.
농업 문제는 뭐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이분들은 전공이 이렇게 다르다 보니 책상 앞에 두는 식물도 다릅니다.
저 같은 기계쟁이는 책상 위에 꽃이 없고,
벼나 콩을 다루는 분들의 책상 위에는 항상 식물이 자랍니다.
그것도 무럭무럭 잘 자랍니다.

농약을 전공한 사람 앞에 꽃을 두면 마디자라는데,
콩을 전공한 사람 앞에 그 꽃을 두면 잘도 자랍니다.
참 신기합니다.
사람의 기가 통하는지...^^*

오늘은 '마디다'는 낱말을 소개해 드릴게요.
그림씨(형용사)로 "자라는 속도가 더디다."는 뜻입니다.
나무가 마디게 자라다처럼 씁니다.
"쉽게 닳거나 없어지지 아니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앞에서 푼 대로
제 앞에서는 마디 자라던 꽃도,
식물을 다루는 사람 앞에만 가면 무럭무럭 잘 자랍니다.
아마도 식물도 사람의 마음을 읽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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