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07] 우리말) 반죽과 변죽

조회 수 3759 추천 수 83 2007.03.07 02:23:22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 고향 친구 이야기를 좀 할게요.
수원에서 빵집을 하는 친구인데,
날마다 새벽 여섯 시에 나가서 자정에 들어올 정도로 고생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서도 암에 걸린 장인어른을 모시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친구는 항상 웃습니다.
저와 함께 있을 때만 웃는 게 아니라,
기쁠 때도 웃고 슬플 때도 웃습니다.
심지어는 잘못을 해 놓고도 웃습니다. ^^*
그래서 그 친구에게는 곧 복이 따라다닐 겁니다.

흔히
"부끄러워하는 느낌이나 마음"을 '부끄러움' 이라고 합니다.
그런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 것을 반죽이 좋다고 합니다.
제 친구처럼...

'반죽'은
"가루에 물을 부어 이겨 갬"이라는 뜻의 이름씨입니다.
쌀가루나 밀가루에 물을 부어 이겨 놓은 것이죠.
이 반죽이 잘 되면 뜻하는 음식을 만들기가 쉽기에,
마음먹은 대로 원하는 물건에 쓸 수 있는 상태를 반죽이 좋다고 합니다.
이 뜻이 변해,
지금은 쉽사리 노여움이나 부끄러움을 타지 아니하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 반죽과 자주 헷갈리는 낱말이 변죽입니다.
'변죽'은
"그릇이나 세간, 과녁 따위의 가장자리."를 뜻합니다.
한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입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변죽을 울리다인데,
"바로 집어 말을 하지 않고 둘러서 말을 하다."는 뜻입니다.

변죽과 반죽은 발음이 비슷할 뿐
뜻은 전혀 다릅니다.

반죽이 좋지 변죽이 좋은 게 아니고,
변죽을 치지 반죽을 치지는 않습니다.

제 친구는 지금 인생의 변죽을 울리고 있지만
반죽이 좋으니 곧 크게 웃을 날이 있을 겁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그 친구와 만나고 싶네요.

우리말123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입니다.

[화/부아]

어젯밤에 퇴근할 때 보니 누가 제 차 범퍼를 들이받고 그냥 가버렸네요.
다행히 문이 아니라 범퍼긴 하지만,
그래도 화가 치밀어 오르네요.
미안하다는 쪽지 하나만 남겼어도 이렇게 부아가 나지는 않을 텐데...
며칠 동안 속 좀 태울 것 같습니다.
어차피 못 잡을 것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겠죠?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을 '화'라고 하죠?
화가 치밀다/화를 내다/화를 돋우다/화를 풀다/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르다처럼 씁니다.
이때의 '화'는 불 화(火) 자를 씁니다.

이와 거의 비슷한 뜻의 순 우리말이 '부아'입니다.
'부아'는 우리가 숨을 쉬도록 해 주는 '폐'의 순 우리말입니다.
보통 화가 나면 숨이 가빠지죠?
화가 나서 숨이 가빠지는 것을 보고,
'부아가 나다' '부아가 치밀다'라는 표현이 생겼습니다.

'화(火)'에 끌려,
'부화가 난다'라고 하거나,
'부애가 난다'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저도 빨리 잊어버리고 일이나 시작해야겠네요.
괜히 부아 내 봐야 제 속만 타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수
공지 성제훈 박사님의 [우리말123] 게시판 입니다. id: moneyplan 2006-08-14 95321
공지 맞춤법 검사기^^ id: moneyplan 2008-11-18 100917
2516 [2017/01/12] 우리말) 흔줄 머니북 2017-01-13 2624
2515 [2017/01/11] 우리말) 우리말 사랑 머니북 2017-01-13 3077
2514 [2017/01/10] 우리말) 트롯트와 트롯 머니북 2017-01-10 3003
2513 [2017/01/09] 우리말) 멀찍이와 가직이 머니북 2017-01-09 3102
2512 [2017/01/02] 우리말) 끄트머리와 실마리 머니북 2017-01-02 2986
2511 [2016/12/29] 우리말) 올 한 해 읽은 책을 정리했습니다. 머니북 2016-12-29 3034
2510 [2016/12/28] 우리말) 올 한 해 보내드린 우리말 편지를 모았습니다. 머니북 2016-12-29 2658
2509 [2016/12/27] 우리말) 해끝 머니북 2016-12-29 3231
2508 [2016/12/26] 우리말) 해넘이와 해맞이 머니북 2016-12-26 3312
2507 [2016/12/23] 우리말) 잉꼬부부와 원앙부부 머니북 2016-12-25 3452
2506 [2016/12/22] 우리말) 날개짓과 날갯짓 머니북 2016-12-23 3372
2505 [2016/12/21] 우리말) 첫걸음 머니북 2016-12-23 3053
2504 [2016/12/20] 우리말) 뚝배기와 곱빼기 머니북 2016-12-21 3325
2503 [2016/12/19] 우리말) 성 중립 언어 머니북 2016-12-20 2694
2502 [2016/12/16] 우리말) 거멀못 머니북 2016-12-19 2678
2501 [2016/12/15] 우리말) 혼밥, 혼술, 혼영, 혼말? 머니북 2016-12-19 3224
2500 [2016/12/14] 우리말) ‘살처분’에 숨겨진 의미 머니북 2016-12-15 3422
2499 [2016/12/13] 우리말) 자치동갑 머니북 2016-12-14 2818
2498 [2016/12/12] 우리말) 짐승의 어미와 새끼 머니북 2016-12-13 3316
2497 [2016/12/09] 우리말) AI, 우리말에 숙제를 던지다 머니북 2016-12-12 2964